그동안 설치, 철수를 반복하면서 물건(작업의 1차적인 재료)을 작업의 일부로, 다시 제자리의 쓰임새가 있는 물건으로 돌아가는 경험을 해왔다. 설치된 물건(대상)은 일상의 기능과는 낯설게, 철수가 끝난 뒤 되돌아간 물건은 이전과는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빌린가게’처럼 내 작업의 재료는 이전 혹은 이후의 이미지를 빌려야만 했던 것 같다.
‘빌린가게’에 설치되는 천장에 드리워진 그물망 안의 수많은 공들은 작품이 시작되기 전 포장상태의 느낌이다. 무언가로 자리 잡기 전의 허공에 떠 있는 상태를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빌린가게’ 자체를 점유하지 않으면서 작품과 물건 사이에서 존재하고자 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