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에서 만나는 모순되거나 대비되는 두 가지 요소를 잇는 작업을 계속해 온 최성임은, 최근 작업들을 통해 일상과 작업 사이에서 미묘한 균형을 이루어 가는 과정에서 느꼈던 수많은 구멍들, 감정의 찌꺼기이자 잉여물인 구멍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는 그의 다른 이야기들과 마찬가지로 일상에서 비롯되었다. 설거지를 하며 늘상 보아왔던, 뒷 베란다에 양파망들이 빨래처럼 걸려있는 풍경. 작가는 그 장면을 보면서 망에 갇혀 있는 듯 보이는 양파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게 되었고, 애잔함과 함께 양파의 생명이 망 밖으로 퍼져나 갔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작가의 일상 속에 가까이 있던 계란망과 볼풀에 쓰이는 플라스틱 공, 철제망 등이 기존 작업에서의 각설탕이나 빵끈이 그랬던 것처럼 예술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물론 최성임의 작업에서 재료 자체는 작업과 일상 생활에서의 작가의 태도를 보여주기 위한 도구에 가깝지만, 일상과 그의 작업이 얼마나 밀접하게 접해 있는지 알아차릴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그 재료들은 작가의 일상공간에서 하나하나 엮여 예술품이 되어가는데, 그렇게 만들어진 수 만개의 공이 든 망은 전시장에 설치됨으로써 빛을 얻게 된다. “언제 예술이 될 것인가 싶은 그 순간에 예술도 작업도 삶의 일상도 여기에, 있다고 믿고 싶다”고 한 최성임의 고백처럼 말이다.
한편, 유연하고 부드러운 망이나 플라스틱공과 대비되는 소재로 쓰인 견고한 철제망은 공이 든 망을 일정 범위 안에 가두어 놓는 틀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이전 작업에서의 구조물과 달리 막아 두지 않고 열어둠으로써, 무한한 확장이 가능하게 했다. 실제로 3층 높이의 뚫린 공간에 설치되었던<끝없는 나무>(2015)에서는 구멍으로 표현되는 공들이 나무가지인듯, 뿌리인듯 끝없이 아래로 뻗어 내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작가의 말대로 닫히고 열리기를 반복하는 그 구멍들은 ‘하나의 세계를 만들고 그 너머의 세계를 향한다’.
이와 같은 선상에서 작가는 사적인 이야기 공간을 공적인 영역으로 확장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그의 전시 제목을 살펴보면 그 변화를 좀 더 쉽게 짐작할 수 있는데, 최성임의 첫 전시 <집으로 가는 길>(2012)에서 그는 예술이라는 집으로 다시 돌아왔고, <은신처>(2013)에서<미묘한 균형>(2014)까지 계속해서 자신의 은신처를 상정하고 있었던 작가가 <두 번째 장소>(2015)에서 드디어 자신을 공적인 영역으로 드러낼 용기를 낸 것이다.물론 아직은 완전히 공적인 곳으로 나온 것이 아니지만, 숨기도 하고 드러날 수도 있는 중간적인 장소인 두 번째 장소에 다다른 것이다. <두번째 장소>전에서 선보인 커다란 설치 작품은 <은신처>에서 사용했던 구조물을 뒤집어 설치한 모양으로, 그곳이 더이상 혼자만의 은신처가 아니라 사람들이 들고 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바뀌었음을 말해준다. 또, 최근 스페이스오에서 있었던HOLES(2015)전에서는 사람들이 좀 더 자유롭게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 두었다. 설치 작품을 보호하기 위해 작품과 관객을 분리시킬 어떤 장치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늘어진 공들 아래에 둥근 소파를 설치해 공이 만들어내는 숲에 앉아 쉬거나 공들을 만져볼 수 있도록 하였다. 일상과 작업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숨을 공간이 필요했던 작가가 그 공간을 공적인 영역으로 드러내기 위한 좀 더 능동적인 움직임을 시작한 셈이다. 한편으로, 둥근 철망 위에 인공조명이라는 장치를 더해 전시장 조명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작품 스스로가 빛을 발하도록 했고, 그 덕분에 노랑, 주황, 파랑, 흰색의 컬러풀한 색공들은 그물망 속에 갇혀 있으나 화사하게 빛났다. 이상하게도 둥근 철망이 만들어내는 큰 구멍과, 각각의 공들이 만들어내는 작고 수많은 구멍들은 무언가의 향연처럼 느껴졌다. 작업과 일상 사이에서 미묘한 균형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던 과정 중에 남겨진 감정의 찌꺼기들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전시장 한 켠에 걸린 양파가 든 망을 찍은 사진은 작가가 구멍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던 단초를 말해주고 있지만, 공과 그물로 만들어진 설치물들은 부엌에서 날마다 행해지는 작가의 일상이 이미 자연스럽게 예술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쩌면 일상과 예술을 연결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들이 이제서야 조금씩 실재화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낮과 밤이 다르면서도 결국은 이어져 있고, 따로 생각하기 어려운 듯이, 지난 시간 동안 일상에서 작업의 의미를 깨닫고 작품 속에서 삶의 생동감을 느낄 수 있었다’는 작가의 말이 이를 함축적으로 잘 말해주는 듯하다.